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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김우중의 몰락, 박정희식 성장 모델에 작별을 고했다” [김대중 육성 회고록 22]

2023-10-16 141 Dailymotion

 ━<br />  김대중 육성 회고록 〈22〉 <br />  ‘제2의 6·25’라고도 했다. 대한민국에 먹구름을 몰고 온 외환위기 얘기다.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에 당선된 나, 김대중(DJ)은 당선자로서 첫날부터 생존의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에 매달렸다. <br />   <br /> 구제금융을 받고 경제 주권을 바친 국제통화기금(IMF) 관리 체제가 본격화한 시기였다. 당장 내일 무슨 일이 터질지 조마조마했다. <br />   <br /> 당선 이틀째인 20일에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불렀다. 나라 곳간 상태가 궁금했다. <br />   <br /> “현재 외환보유액이 30억700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. 당장 내년 1월 만기의 외채가 돌아오면 갚기 어렵습니다.” <br />   <br /> 곳간이 텅 비어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. 나라 경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. 대한민국이 파산의 벼랑으로 치닫고 있음을 절감했다. <br />   <br /> 외환위기는 성장지상주의에 매달려 온 ‘박정희식 발전 모델’에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라고 본다. 당시 기업들은 경쟁력과 수익성을 외면한 채 문어발식 외형적 성장에 빠져 있었다. <br />   <br /> 권력과 결탁해 금융기관의 특혜 대출을 받아 덩치만 키웠다. 대마불사(大馬不死)의 배짱으로 배수진까지 쳤다. <br />   <br /> 방만한 경영 속에 위기가 닥치자 부실해진 기업과 금융기관은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. 정부의 오판과 대응 실패로 국가 부도의 수렁으로 몰렸다. 이것이 외환위기 사태의 본질이다. <br />   <br />   <br /> 박정희 개발독재 vs 대중경제론 <br />   <br /> ...<br /><br />기사 원문 : 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5199787?cloc=dailymotion</a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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